『조커』는 2019년 토드 필립스 감독이 연출하고 호아킨 피닉스가 주연한 심리 드라마로, DC 코믹스의 빌런 ‘조커’의 기원을 사실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광기와 절망 속에서 탄생한 악당의 서사를 통해 현대 사회의 불평등과 소외, 정신 질환에 대한 인식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호아킨 피닉스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며, 깊이 있는 연기와 함께 ‘조커’라는 인물을 새롭게 정의해 냈다. 코믹북 원작에 기대지 않고도 완성도 높은 영화로서 전 세계 관객들의 극찬을 받았다.
줄거리
영화는 고담시의 빈곤하고 황폐한 분위기 속에서 아서 플렉이라는 한 남성의 삶을 조명한다. 아서는 광대 일을 하며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고 있지만, 조롱과 학대, 사회의 무관심 속에서 점점 심리적으로 파괴되어 간다. 그는 정신 질환을 앓고 있으며, 감정을 제어하지 못해 웃음을 터뜨리는 발작을 겪는다. 아서는 어머니 페니와 함께 살고 있으며, TV 코미디 쇼의 진행자 머레이 프랭클린에게 강한 집착을 보인다. 어느 날 지하철에서 젊은 남성 세 명에게 폭행을 당하던 중, 그들을 총으로 쏴 죽이면서 아서의 인생은 급변한다. 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고, 고담의 하층민들은 아서를 ‘조커’로 칭하며 반란의 상징으로 떠받든다. 점점 더 자신의 존재감을 찾는 아서는 기존의 자아를 지워가며 ‘조커’로 변화한다. 동시에 그는 어머니의 과거를 파헤치며 자신이 상상해 왔던 가족 서사가 거짓임을 알게 된다. 페니가 고담시 부호인 토머스 웨인과 연관되어 있다고 믿었지만, 결국 그녀가 정신병력으로 아서를 입양했으며 학대까지 저질렀다는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충격에 빠진 아서는 병원에 입원한 어머니를 살해하고, 자신을 괴롭혔던 직장 동료를 찾아가 보복한다. 결정적인 장면은 조커가 머레이 쇼에 출연하는 장면이다. 그는 자신이 지하철 총격 사건의 범인임을 밝히고, 웃음을 유도하려던 머레이를 생방송 도중 총으로 살해한다. 이 사건은 고담시의 폭동을 촉발시키고, 혼란은 극에 달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조커는 경찰에 체포되지만, 이내 병원에서 탈출하며 광대의 웃음을 터뜨린다. 이 영화는 한 개인이 어떻게 사회적 배제와 무관심, 정신적 고통 속에서 악으로 탄생하게 되는지를 생생히 보여주며, 관객에게 불편한 진실과 공감을 동시에 남긴다.
등장인물
아서 플렉 / 조커(호아킨 피닉스)는 영화의 중심인물로, 코미디언이 되길 꿈꾸는 광대이다. 그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으며, 고독과 가난, 사회적 소외 속에서 점차 광기에 사로잡힌다. 영화는 그가 조커로 변모하는 과정을 밀도 있게 그려내며, 피닉스의 섬세한 연기는 이 복잡한 내면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페니 플렉(프란시스 콘로이)은 아서의 어머니로, 아들과 함께 좁은 아파트에서 생활한다. 과거 토머스 웨인에게 편지를 보내며 그의 도움을 청하는데, 이는 아서의 출생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그녀는 정신병력이 있었고 아서를 입양해 학대한 과거가 있다. 머레이 프랭클린(로버트 드 니로)은 유명한 토크쇼 진행자로, 아서가 동경하는 인물이다. 처음에는 아서의 영상을 조롱의 대상으로 방송했지만, 결국 그 방송 출연이 아서의 변신을 극단으로 몰고 가는 계기가 된다. 그의 죽음은 사회적 폭동의 도화선이 된다. 소피 듀몬(재지 비츠)은 아서의 이웃으로, 아서가 연인이라 착각했던 여성이다. 영화 후반부에서 그녀와의 관계가 아서의 상상이었음이 드러나며, 그의 정신 상태가 얼마나 왜곡되어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랜들과 게리는 아서의 동료 광대들로, 랜들은 아서를 배신하고, 게리는 비교적 친절한 존재로 남는다. 랜들의 배신은 아서의 분노를 자극하고, 게리는 아서의 인간적인 일면을 확인시켜 주는 존재다. 토머스 웨인은 고담시의 부유한 정치가로, 아서가 자신의 아버지라 믿게 되는 인물이다. 그러나 그는 아서의 존재를 부정하며, 그의 분노와 절망을 심화시킨다. 이 인물은 후속 ‘배트맨’ 서사와도 연결되는 핵심적 배경이다. 각 인물은 아서가 ‘조커’로 변하는 데 있어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고담이라는 도시의 구조적 병폐와 인간관계의 비극을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한다.
감상평
『조커』는 단순한 빌런의 기원 영화가 아니다. 이 작품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한 인간이 어떻게 파괴되고, 또 그 파괴 속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찾아가는지를 냉정하게 보여준다. 처음에는 그저 연민이 들었던 아서라는 인물이 점점 더 위험한 존재로 변해갈 때, 관객은 그 변화에 경악하면서도 묘한 동정을 느낀다. 이것이 이 영화의 가장 강력한 지점이다. 호아킨 피닉스는 이 복잡한 캐릭터를 연기하면서 체중을 감량하고, 몸짓 하나하나에 광기의 디테일을 담아냈다. 그의 연기는 영화 그 자체였으며, 조커라는 캐릭터를 완전히 새롭게 정의했다. 우리는 그가 왜 웃는지, 왜 분노하는지를 알게 되며, 그러면서도 그의 선택을 쉽게 정당화할 수는 없다. 영화는 무척 불편하다. 아름다운 고담시를 배경으로 하지만, 그 안의 사람들은 모두 고립되어 있고, 거리는 더럽고 음울하다. 모든 장면은 일종의 불안감을 자아내며, 점점 조커가 되어가는 아서를 따라가는 과정은 무척이나 긴장감이 넘친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현대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가득하다. 정신질환을 개인의 문제로 떠넘기는 사회, 가난한 이들의 절규에 귀를 막은 정치와 언론, 그리고 폭력을 소비하는 대중. 영화는 이러한 요소들이 ‘괴물’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이라는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조커』를 본 후, 한동안 그 감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만약 나였다면?" "나도 이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영화는 그 답을 주지 않지만, 질문을 멈추지 않게 만든다. 그 점에서 『조커』는 단순한 오락을 넘어선, 하나의 사회적 선언처럼 느껴졌다.